근간​

The origins of our story
밀라노와 산은 비탈레 브라마니 그리고 수많은 기회가 태어나는 공간이자 다양한 선택지를 제시하는 비브람을 대표합니다.
비탈레 브라마니 (VITALE BRAMANI)
천재적인 등산가이자 성공한 기업가인 비탈레 브라마니의 일생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이 두 가지 특징이 서로 얽히고 겹치며 이탈리아 산악계와 전 세계 창업 문화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1900년 5월 3일 밀라노에서 태어난 비탈레는 어린 시절부터 이미 창의성과 수완 그리고 비범한 에너지를 보였습니다. 이 모든 에너지가 훗날 비탈레의 산을 향한 열정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비탈레는 15세에 SEM(Società Escursionisti Milanesi, 밀라노 산악회)에 가입했습니다. 그로부터 2년 후에는 그가 첫 번째로 도전한 6등급 산인 토리오네 마냐기(Torrione Magnaghi)를 등정했습니다. 신동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후 비탈레는 알프스의 모든 봉우리를 차례로 등정하기에 이릅니다. 비탈레는 25세에 CAI(이탈리아 알파인 클럽)에 가입했고, 얼마 후 CAAI(이탈리아 아카데믹 알파인 클럽)에도 가입했습니다. 비탈레는 저명인사의 가이드로도 유명했습니다. 예를 들어, 1931년에 산악인이기도 했던 벨기에 왕 알버트 1세와 함께 토레마냐기산의 정상을 밟았습니다. 1933년 비탈레의 빛나는 경력은 절정에 이르렀고, CAI로부터 용감한 산악인에게 주는 금메달을 받았습니다. 밀라노 중심부에 있는 아버지의 작업실에서 인레이 작업 및 캐비닛 제작 기술을 배운 비탈레는 1928년에 델라 스피가 8번지에 비브람(Vibram)이라는 이름의 등산용품 전문점을 개점했습니다. 비브람은 비탈레가 CAI 및 SEM에서 내는 잡지에 실을 자신의 기사에 서명할 때 사용했던 이름입니다. 비탈레는 1927년에 마리아 파사나(Maria Fasana)와 결혼했습니다. 비탈레의 작은 가게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밀라노 산악인 커뮤니티의 만남의 장소가 되었는데, 이는 아내 마리아 덕분이었습니다. 푼타라시카산에서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한 지 2년 뒤인 1937년에 카라마토(Carrarmato) 밑창의 발명과 함께 성공 스토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때부터 비탈레는 산악인이기보다는 선구적인 기업가로 활동합니다. 1947년 비탈레는 갈라라테에 1호 공장인 고마 테크니카(Gomma Tecnica)를 설립했습니다. 1957년에는 공장 본부를 알비자테(Albizzate)로 이전하고 이름을 비브람이라고 지었습니다. 직원들과 함께 찍은 낡은 사진에서 비탈레는 편안하게 웃고 있습니다. 그는 창의력과 직관력이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무엇보다도 조직 속에서 구성원과 함께 일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1954년은 대중의 인정을 받은 해입니다. K2를 정복한 이탈리아 산악인들이 돌로미테(Dolomite) 부츠를 신고 있었는데, 그 부츠에는 바로 비브람 밑창이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1960년대에는 밑창 제조 라이선스를 다른 나라로 이전하며 국제적으로 사업을 확장했습니다. 아르헨티나를 필두로 미국, 칠레, 호주, 뉴질랜드, 스위스 주재 유럽인, 그리스 및 네덜란드로 라이선스를 이전했습니다. 비탈레는 진취적인 사고를 한시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저널리스트 발터 토바지(Walter Tobagi)와 진행한 인터뷰를 보면 더욱 잘 드러납니다. “낡은 아이디어에 집착하지 마세요.” .
우리의 집단적 상상 속에서 산은 시대를 초월한 장소입니다. 산은 인생을 가르치는 스승이고, 정직하고도 준엄하며, 모든 탐험가와 산악인을 위한 육체적, 정신적 탈출구입니다. 산은 언제나 그곳에 있었습니다. 지식과 절대적인 것에 대한 본능적 욕망에 이끌려 어느 순간 사람이 사는 땅을 벗어나 거친 자연과 맞선 존재는 우리 인간이었습니다. 19세기에는 산의 불규칙적인 아름다움이 예술과 문학에 스며들어, 매혹적이지만 위험한 이 대상을 아름답고 고귀한 그림과 시로 묘사했습니다. 미지의 세계를 발견하려는 노력과 산을 향한 갈망이 갈등하는 가운데 비탈레 브라마니는 마침내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 밀라노에서 가장 가까운 그리냐 산에 오르게 됩니다. 이 시대의 모든 위대한 산악인, 등반가, 모험가와 마찬가지로, 비탈레에게도 산은 자기 자신 및 개인적인 고통에 도전하는 장소였고, 자신의 집념과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마음속 번뇌는 오직 산 정상에 섰을 때만 진정되는 듯했습니다. “산에서 보내는 날들이 값진 이유는 등산이 고되기 때문이 아니라 산이 우리에게 준 기쁨, 우리의 영혼에 남긴 커다란 빛 때문입니다.” 비탈레에게 산은 영감의 원천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놀라운 발명품인 카라마토 밑창이 탄생한 곳도 바로 산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비브람은 마니아와 아마추어를 가리지 않고, 알프스에서 히말라야까지 눈과 얼음, 바위로 뒤덮인 길을 등반가 및 탐험가와 함께 걸었습니다. 1938년 리카르도 카생(Riccardo Cassin)이 정복한 그랑드 조라스부터 1955년 발터 보나티(Walter Bonatti)가 정복한 프티 드뤼까지, 그리고 1970년 라인홀드 메스너(Reinhold Messner)가 정복한 낭가파르바트부터 2013년 윌리 슈텍(Ueli Steck)이 정복한 안나푸르나까지 발과 지면의 접촉을 밀접하고 기능적으로 만들어주는 비브람의 밑창은 세계에서 높기로 손꼽히는 봉우리들을 80년 넘게 ‘등반’해 왔습니다. 당사는 산에 대한 존중심과 경외심을 확산 시켜 우리 인간과 지구가 연결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 왔습니다. 라인홀트 메스너의 말대로, 걸으면 자연 속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천천히 걷는 이유입니다. 저는 결코 서두르지 않아요. 자연은 체육관이 아닙니다. 저는 제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보고 느끼기 위해 산에 갑니다. 그러면 내 영혼이 나무에, 초원에, 꽃에 스며듭니다. 높은 산이 제게는 일종의 감각인 셈이죠.”
밀라노
밀라노 대성당의 대리석 파사드와 첨탑, 인상적인 창은 산의 바위 벽, 봉우리, 깊은 동굴을 상징합니다. 돌로미티 산맥 출신으로 밀라노에서 활동한 작가이자 산악인 겸 화가인 디노 부자티(Dino Buzzati)는 1957년 작 밀라노 두오모 광장에서 밀라노의 두오모를 이와 같은 방식으로 묘사하여, 산과 도시를 잇는 본연의 연계성을 표현했습니다. 실제로 맑은 날에는 두오모의 첨탑들 사이로 알프스가 닿을 듯 보입니다. 밀라노는 1891년 밀라노 산악회 SEM의 창립과 더불어 산과 연결된 도시로서 그 역사가 시작됩니다. SEM은 노동자 계급이 육체와 정신의 회복과 레크리에이션을 위해 등산을 좀 더 가까이하기를 원했던 약 30명의 노동자에 의해 창설되었습니다. 스스로 세미니라고 부르는 SEM의 회원들이 오른 봉우리에는 저마다 힘과 정교한 기술이 필요한 구간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들 봉우리는 대중교통으로 도달할 수 있는 곳이라야 합니다. 또, 세미니들이 등정할 수 있는 날은 오직 일요일 하루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밀라노와 가까운 곳이라야 합니다. 그것은 오늘날에는 생각도 할 수 없이 힘든, 진정한 정복이자 희생이 요구되는 등정이었습니다. 비탈레 브라마니는 산악 가이드로서 맞이할 미래를 위한 토대를 이곳에 마련하고, 세미니들의 끈기를 키우고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확립할 방법과 창의성을 개발했습니다. 1928년 비탈레와 아내 마리아 파사나는 밀라노 중심부인 델라스피가 8번지에 첫 번째 비브람 매장을 열었습니다. 여기서는 등산 의류와 장비를 판매했으며, 비탈레는 목공 기술을 발휘하여 스키 수리 서비스도 제공했습니다. 밀라노시에서 이전에는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이 매장은 머지않아 밀라노의 산악인 및 등산 애호가들이 모여 등반 계획을 세우는 만남의 장소가 됩니다. 이 매장을 자주 찾은 사람들 가운데는 마리아의 오빠이자 산악인 겸 예술가 오이제니오 파사나(Eugenio Fasana), 비탈레와 함께 카라마토 밑창을 처음으로 테스트한 비탈레의 등반 파트너 에토레 카스틸랴뇨(Ettore Castiglioni), 비탈레의 절친한 친구 엘베치오 보촐리 파라사키(Elvezio Bozzoli Parasacchi) 및 알도 보나코사 백작(Count Aldo Bonacossa)이 있습니다. 수년에 걸쳐 비브람 매장은 등산 장비와 관련된 그 모든 혁신에 힘입어 아방가르드와 동의어가 되었습니다. 아직 어린 발터 보나티조차도 1947년에 레지넬리 고원의 카날로네포르타에 도전하기에 앞서 밀라노 중심부에 있는 이 매장에서 장비를 구입했습니다. 밀라노와 산은 미래 지향적으로 견고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2026년 동계 올림픽의 일부 경기가 밀라노에서 개최될 예정입니다. 밀라노는 비탈레 브라마니에게, 그리고 비브람에도, 기회의 땅이자 선택의 장소를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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