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BRAM ON TOP

THE CHALLENGES ARE A CHANCE TO IMPROVE.
더 높은 곳을 향해, 알프스부터 히말라야까지 세계 정상을 향하는 발걸음에 비브람이 함께합니다.
알프스
세계에서 가장 주목할 만하고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산맥 중 하나인 알프스는 이탈리아어로 등산을 의미하는 alpinismo의 어원이 될 만큼 산악의 대명사입니다. 보리스 비안(Boris Vian)이 ‘푸른색에 지친 깊은 하늘이 산에 내려앉은 나라’라고 썼듯이, 알프스는 4,000m가 넘는 수많은 봉우리를 자랑합니다. 가장 높은 몽블랑은 높이가 4,809m이고 동서의 길이는 약 1,200km에 달합니다. 이들은 비탈레 브라마니의 산입니다. 그의 등산에 대한 열정이 실현되는 땅이자, 그의 직감이 카라마토 밑창의 발명으로 이어진 곳입니다. 비탈레의 주목할 만한 첫 번째 등반은 겨우 17세의 나이로 오른 스파카투라도네스였습니다. 이 산은 토리오네 마냐기 메리디오날레(2,040m)의 서벽에 있는 봉우리입니다. 그 후 비탈레는 연달아 등산에 성공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산으로 1923년 오이제니오 파사나와 함께 오른 콜산스놈(3,300m)과 그로부터 1년 후 친구 엘베치오 보촐리 파라사키와 함께 오른 발카모니카의 토리오네 델로르소를 꼽을 수 있습니다. 1920년대 서부 알프스를 정복한 비탈레는 1930년대에는 에토레 카스틸료니와 함께 동부를 정복합니다. 두 사람은 팔레 디 산마르티노의 치마당게라스와 그루포셀라의 토레 디 로세스를 비롯한 여러 봉우리를 정복합니다. 1937년에 비탈레 브라마니는 두 가지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발브라갈리아의 피쪼 바딜레의 북서벽(3,308m)을 정복했고, 첫 번째 비브람 카라마토 밑창을 성공적으로 테스트했습니다. 그 순간부터 비브람(밑창)은 알프스의 가장 중요한 업적 중 하나로 자리매김합니다. 그로부터 1년 후, 리카르도 카생은 비브람의 도움을 받아 그랑데스조라세스의 푼타발커 봉 북부 지맥 등반에 성공합니다. 1955년 발터 보나티는 비브람 밑창이 장착된 부츠를 신고 프티드뤼의 웨스트필라를 처음으로 혼자 등반합니다. 1961년은 토니 킨스호퍼(Toni Kinshofer), 안데를 만하르트(Anderl Mannhardt), 발터 알름베르거(Walter Almberger) 및 토니 히벨러(Toni Hiebeler)가 첫 번째 겨울 등정에 성공한 해입니다. 그들은 아이거봉 북벽을 정복했습니다. 알프스에서 비브람 밑창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산맥을 모두 정복했습니다.
K2
“첫걸음을 내딛는 일부터 이토록 어려운데, 이 길고 끔찍한 등반을 어떻게 완수하겠습니까... K2는 아무도 정복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탈리아 제독이자 탐험가 겸 등산가인 루이지 아메데오 디 사보이아(Luigi Amedeo di Savoia)는 1909년 쿠르마이에르를 잘 아는 인도 출신 셰르파 350명 및 사진작가 비토리오 셀라(Vittorio Sella)와 함께 K2 등정을 시도한 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의 말은 틀렸습니다. 그 후 45년이 더 걸리기는 했으나, 8,611m의 K2는 결국 정복될 봉우리였습니다. 1954년 7월 31일 CAI가 후원하고 아르디토 데지오(Ardito Desio)가 이끄는 이탈리아 원정대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이 봉우리의 정상을 처음으로 밟았습니다. 산악계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전체의 승리와도 같은 정복이었으며, 2차 세계대전이 남긴 폐허에서 다시 일어서고 있는 국민에게 용기를 주는 소식이었습니다. “이는 지구가 우리의 강인함을 시험하기 위해 제시한 얼마 남지 않은 생존의 기회 중 가장 큰 것이었으며, 광대하고 거칠고 사나운 미지의 자연에 대한 보잘것없는 인간의 가장 대담한 도전이었다.” 1954년 8월 4일 자 신문 <코리에레 델라 세라(Corriere della Sera)>에 실린 디노 부자티의 이 말은 이 업적이 얼마나 비범한 사건인지 가늠케 합니다. 승리한 원정대원들은 최상의 장비로 무장하고 있었습니다. 이동, 베이스캠프까지의 트레킹, 어프로치, 높은 고도의 1차 캠프로 전진, 정상까지의 마지막 스프린트. 그들은 비브람 밑창이 달린 각종 돌로미테 부츠를 각각의 경우에 맞게 신었습니다. 아르디토 데지오는 이탈리아로 돌아온 후 비탈레 브라마니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냅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제공한 비브람 밑창은 K2 원정에 대단히 유용했습니다. 어프로치 동안 오랜 행진에서 내구성과 저항성을 보여주었고, 바위와 얼음이 혼합된 지형에서는 완벽한 접지력을 입증하며 원정대의 승리에 기여했습니다.” 비브람 밑창은 1978년에 처음으로 산소통 없이 K2 정상에 도달한 미국 원정대가 선택한 밑창이기도 합니다. 원정대의 짐 휘태커(Jim Whittaker) 대장은 비브람을 선택한 이유를 다른 원정에서 얻은 성공의 원인이 세계 최고의 밑창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1970년대의 아웃도어 동호인들 사이에서 비브람이 국제적인 명성을 얻는 데 기여한 수많은 승리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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